[개신교] 십일조는 비복음이다.교회개혁의 시작은 십일조 폐지이다

by 박노아 posted May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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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ame=http%3A%2F%2Fblog.koreadaily.com%개신교, 초교파, 성경적인 목사는 신학교가 아닌 사회직업 먼저 갖고 가정교회나 독립교회로 자비량 설교 봉사한다, 교회는 성전이나 건물이 아니다, 천국지옥

 

etc_02.gif?v=2 2분 영상이 안보일 때: https://youtu.be/oDMdX7VVPTQ

 

원출처: 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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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w_icon_s443.gif 케이투(닉네임) 라는 분의 2014년 신앙칼럼을 스크랩하여 게시합니다!!

 

[원제목] 십일조는 비복음이다

 

십일조 문제는 아직도 한국 개신교계에서는 뜨거운 감자 같은 논란거리인 것 같다. 사실, 이 문제는 서구 기독교계에서는(카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에서도..) 이미 신학적, 신앙적 정리가 끝나서 지금은 어느 국가의 교회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종교행위인데, 특히 한국의 개신교계에서만 아직도 살아 남아서 여러가지 신앙적 혼란과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선, 이 십일조 논쟁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논란이 있어 왔던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만 간략히 그 논란의 요점을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십일조 헌금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은 사람들이 이 십일조 헌금은 성경에 따른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므로 신자라면 마땅히 지켜야하는 법이라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다. 한 번 살펴보자.

 

1)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 (신명기 14장 / 26장)


하나님의 명령도 한시적인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만일, 그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니까 시대를 초월하여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제사도 드려야 하고, 오징어나 돼지고기도 먹으면 안되고, 할례도 다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주장은 말이 안되는 것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는데 그 이유는 이런 율법들은 모두 다 한시적 율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후, 신약시대 이후는 그런 것은 다 지나간 구시대의 법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십일조 법도 성전과 제사 제도가 존재했던 구약시대에만 필요했던 하나님의 명령이요 율법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는 레위 지파라는 특수 지파가 있었다. 그들은 제사 임무를 위해서 따로 구별된 지파이고 그들에게는 먹고 살 땅이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11지파가 분배받은 땅에서 난 소출 중에서 10분의 1을 거둬서 그들에게 준 것이다. 이것이 십일조 법의 기본 근거인 것이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AD 70년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고 모든 백성들이 다 풍지박산 난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스라엘이란 국가 자체도 없어지고 성전도 제사도 없어진 마당에 당연히 레위인도 십일조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시말하면, 십일조는 그것을 거두어 나눠 줄 대상이 있을 때 필요했던 한시적 율법이란 말이다. (물론, 십일조 정신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눔의 정신이 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성직자가 레위인들 아니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전혀 아니다. 지금의 개신교회에는 신분상 제사장이란 직분은 없다. 목사도 똑같은 신자로서 다만 직무에 따른 구분일 뿐이지, (오히려, 교리적으로 신분상 성직자를 인정하는 카톨릭 조차도 십일조란 명목의 헌금은 걷지 않는다.)

 

2)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 이기에 바쳐야 한다? (말라기 3장 8절에 대한 해석)

 

"사람이 어찌 하나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라기 3장 8절) 이것도 역시 그 문맥과 의미를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그 당시 제사장들의 부패한 행태를 질책하고 경고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우선, '도적질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일반 백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일반백성이 아니라 십일조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책임을 맡은 제사장들이다. 그 당시 그들은 그런 헌물을 그 본래의 뜻대로 잘 나눠주고 제대로 쓰지 않고 제멋대로 자기들 뱃속으로 착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도적놈들이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불한당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헌물'이란 의무적으로 바쳐야하는 것이 아니라, 즉 헌물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저 스스로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일단 바쳐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소위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왜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실까? 그 뜻은 '하나님의 것' 이라는 의미는 "곤궁한 자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서 가난한 백성들과 레위인들에게 마땅히 분배되어야 할 헌물들" 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점은 하나님의 "소유권"이 아니라 그것이 마땅히 쓰여져야 할 곳에 쓰여져야만 한다는데, 즉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려고 "하나님의 것" 이라고 하는 것이지 쉽게 풀어 보면, "그것들은 도적놈들 너희가 마음대로 먹어 치워도 좋은 '너희들의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바로 '내 것'이니라!"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잘 보면 '하나님의 것' 이란 십일조 그 자체가 아니므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하나님 자신의 것이라 하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3) 예수님이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대한 해석)

 

"화 있을 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장 42절 / 마태복음 23장 23절)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우리 역시 십일조를 드려야 하다는 주장인데 과연 그런 뜻일까?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도 그 당시 시대적인 조건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책망하기 위해 여러가지 왜곡된 신앙 행위들 중에서 특별히 십일조를 한 예로 드신 것 뿐이다. 결코, 십일조를 잘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러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라"고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당시에는 아직까지 제단과 성전이 있었다.

 

당연히, 레위인도 있었다. 또한, 다른 문맥을 보면 예수님도 제단과 성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은 십일조가 필요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즉, 이것 역시 그 시대에 국한된 말씀이란 뜻이다.

 

만일,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시대를 초월하여 지켜야 한다면, 예수님이 할례를 받았으니 우리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셨으니 성전이 없는 지금도 성전세를 내야 할 것이며, 그리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으니 우리도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옳지 않을까?

 

그러면, 전도하러 가는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대로, 지금도 전도하는 사람은 돈주머니도 필요없고, 두벌 옷이나 신발도 없이, 달랑 샌들 하나 신고 단벌 옷에 돈도 없이 다녀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산상수훈의 명령들은 어떻게 지키며 과연 그대로 하고 있나?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으면서 왜 십일조만은 반드시 예수님의 말씀대로 드려야 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런 성경구절을 들어서 십일조의 성경적 근거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웃기는 것이며 터무니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 신약시대 이후에는 십일조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이유는 십일조는 성전 체제와 제사 제도에 종속된 것이기 때문이며, 그런 제사 제도와 성전이 필요 없게 된 이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4) 십일조가 율법 이전에도 이미 있었다?

 

어떤 사람은 주장하기를 십일조는 이미 율법 이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아브라함과 야곱의 경우를 들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먼저, 아브라함은 가나안과의 전쟁 후 전리품 중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는데, 이는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축복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준 것이지, 이를 율법의 십일조로 생각할 근거가 없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면, 전승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주는 것은 다른 역사적 사건들에도 종종 있어 왔던 것이라고 한다.

 

즉, 십분의 일을 준 것은 그저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른 것이지 어떤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개입된 것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만일, 그렇지않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율법의 십일조의 효시라면 이 사건 이후에도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렸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은 전혀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행위는 단순히 감사한 마음에서 고대의 관습을 따라 십분의 일을 주었던 단1회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야곱은 창 28:20-22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소원을 이루어 주시면 십분의 일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이것은 소위 '조건부 십일조'라 할 수 있는 바, 이것은 결코 올바른 행동이 아닐뿐더러 이것이 어떻게 율법의 십일조 정신에 부합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주고 받기" 식의 거래일 뿐이지, 그리고 마찬가지로 야곱 역시 그런 약속을 한 이후에 가나안으로 돌아 와서도 한번도 십일조를 했다는 기록이 없다. 당연히, 그것을 도대체 누구에게 바친단 말인가?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와같은 행위를 가지고 십일조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니 말도 안되는 것이다. 결국, 아브라함과 야곱의 행위에서 십일조의 기원을 찾는 것은 억지일 뿐이며 절대 성경적이지 않다.

 

2.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일체의 의무적 율법은 폐지 되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일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율법을 폐지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셨다 (갈라디아서 5장). 그러므로, 이제는 신약시대의 신자에게는 율법적 의무란 없다. 다만 자발적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초대교회 최초의 공의회가 열리는데 거기서 결정된 것은 할례를 포함한 일체의 율법적 의무를 폐지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유대인들에게 율법적 의무였던 십일조도 폐지된 것이다.

 

십자가 사건 이후 모든 율법을 폐지하는 것은 당연히 십자가의 뜻을 안다면 마땅한 결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율법적 규정을 존속시키려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그리스도 사건이후에 모든 율법은 없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켰다"는 말씀은 과거의 것을 폐지하고 더 좋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셨다는 말이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로 폐지하시고 더 좋은 자유로운 사랑의 구제 헌금인 "연보"로 대체하신 것이다. 이 연보란 개념 속에는 결코 율법이나 의무 개념이 없다. 어디까지나 사랑의 자발적 헌금이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안식일은 주일로, 할례는 세례로, 유월절 만찬은 성찬식으로 바꾸는 등.. 다른 율법들은 다 바꾸면서도 유독 십일조만은 아직도 존속시키려고 하는지 그 속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십일조 제도의 폐해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십일조 할 사람은 하고 자유롭게 놔두면 되지 않냐? 라고 말이다. 아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잘못된 것들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자칫 더 나쁜 결과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나쁜 종양은 빨리 도려내는 것이 좋듯이, 십일조가 일으키는 문제점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십일조를 그냥 두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다시 포기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그것은 마치 지금도 그냥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괜찮치 않느냐? 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다시 율법적 신앙으로 회귀시키는 일이란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8) 고 설교했던 것이다.

 

2) 교회가 재물에 대한 잘못된 욕심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십일조를 잘못 걷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제대로 쓰지 않고 쌓아두거나 엉뚱하게 건물짓는데 쓴다는 등..하게 되면 교회가 부로 인하여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돈의 유혹을 과소평가하면 안된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은 겸해서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사실로 현재의 한국교회의 실상을 돌아보면 자명하지 않은가?

 

오늘의 한국 개신교는 점점 중세의 카톨릭을 닮아가고 있다. 그 원인 중에는 교회에 돈과 권력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되는데 십일조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쌓이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잘 모르고 십일조 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부패를 조장시켜 주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업은 무슨 돈으로 하는가? 교회는 사업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다만, 신자들 하나 하나가 빛과 소금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 밖의 일들은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을 구분할수 있어야 한다. 돈 없어도 교회는 존재한다.

 

성장과 부흥을 할 수 있다. 오히려, 돈이 없을 때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될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듯이 교회도 재산이 많아지면 본질을 잃어버리고 타락할 가능성이 훨씬 많다. 이미 중세 기독교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3) 신자들에게 물질주의적인 신앙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교회는 이 구절을 들어 십일조 잘하면 복 받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이것은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떼어 먹지 말고 제대로 잘 나눠 주라는 말씀이지, '백성들에게' 십일조 잘하면 복 받는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 당시 그들은 그런 헌물을 그 본래의 뜻대로 잘 나눠주거나 올바로 쓰지도 않고 제멋대로 자기들 뱃속에 착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십일조 잘해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다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것을 마치 순전히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말로 속이는 것이다. 목사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속이고 모르고도 속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무 약효도 없는 가짜약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파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사기치는 것이다.

 

또한, 신자들 역시 문제이다. 신자들의 경우도 십일조를 함으로 더 많은 물질 축복을 얻어 내고자 하는 잘못된 욕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거래하자는 것인데,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실상은 많은 신자들이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하고자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게 지금의 교회 현실이다.

 

참고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십일조를 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십일조를 거둬서 가난한 자들과 곤궁한 이웃을 위해서 전액 제대로 쓰여질 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신명기 26장). 그러므로, 진정 복을 받고 싶다면 그렇게 제대로 쓰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4) 잘못된 죄책감만 조장시키고 형식적, 외식적 신앙 행태를 조장한다.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않은 신자들에게 자꾸만 십일조를 강요하다시피 강조하는 것은 자칫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으로 만들 가능성이 다분하다. 아니면, 그것을 제대로 못한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쓸데없는 죄의식 때문에 즐거워야할 신앙생활이 잔뜩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지금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벗겨 놓으신 짐을 또다시 걸머지고 가려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4. 올바른 십일조 정신을 구현하는 길은 무엇일까?

 

구약의 십일조 법에는 과부와 고아등.. 그 지역 안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3년마다 십일조를 거둬서 나눠 주도록 되어 있는데, 이 정신은 참으로 본받아야 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명기 26장)

 

지금도 사회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헌금 명목은 구제금이나 사랑의 헌금 등의 명목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신약에 의하면 그런 것을 일컬어 "연보" 라고 하고 있다. 연보의 의미는 "자기 것을 버려서 남의 부족한 것을 메꾼다"는 뜻이다. 또, 그렇게 거뒀다면 당연히 그 전액을 다 그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이와같은 십일조의 정신을 살리자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헌금이어야 하는 것이지, '십일조 법' 같은 어떤 종교적 의무로 규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의무가 되어 버리면 그 순수한 정신은 훼손되고 왜곡되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처럼 외식적이고 형식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십일조를 여전히 지키겠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십일조를 폐지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도 하고,

 

모든 율법을 폐지하시고 새로운 사랑의 법으로 대치해 놓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결과적으로 교회와 신자들을 기복신앙과 물질숭배로 치닫게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개혁은 바로 이 십일조 폐지 운동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펌출처: https://is.gd/WScOYC 

 

끝까지, 1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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