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사례] 사도신경을 폐지한 교회-사도신경 무엇이 문제인가?

by 박노아 posted Mar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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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ame=http%3A%2F%2Fblog.koreadaily.com%개신교, 초교파, 사도신경은 12 사도들이 한마디씩 말한 적이 전혀 없는 가톨릭 교회의 신조임을 알고 즉시 폐지합시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딤후 4:3~4), 천국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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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자료 포함): http://bitly.kr/QnxbB , http://bitly.kr/ilw4V 

 

[원제목] 사도신경 무엇이 문제인가?

 

성경과 사도신경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행 8:37). (개역성서에는 이 구절이 없음)

서방 사본 중 일부에 나타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앞에 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외 확신을 받았으니 지금 침례를 받음이 무슨 꺼리낌이 있느냐는 반문으로 모든 것이 해소되었기에 불 분명한 사본의 일치를 보이지 않은 사도행전 8장 37절을 우리들이 사용하는 개역 성경에서는 없음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즉, 초대교회 시대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성경에서 찾아 보게 하는 구절입니다. 믿으면 구원! 구원받은 자에게 그리고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 부활 내 부활의 신앙을 갖고 살고자 하는 자에게 침례를 베풀었던 것이 초대교회의 전부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에 사도신경이 있는가?

성경에 사도신경이 있는가? 한 마디로 없다. 물론 사도신경의 내용은 모두 성경에 있는 기독교의 근본 되는 교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을 교회신조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주문을 외우듯이 낭송한다든지 입교신자의 기본적인 지침이라든지 하는 그 같은 것은 성경에 전혀 없는 말이다. 성경에 없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은 성경에 없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도 아니요, 사도들이 만든 것도 아니기 때문에 10계명이나 주기도문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이단연구전문가 탁명환씨는 이단을 판별하는 규정 가운데 하나가 사도신경을 부인하면 이단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경 이외에 어떤 신조를 만들어 그것을 교리화해서 낭송하는 행위를 반대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반대하면 이단이라고 했기 때문에 탁명환씨가 생존해 있을 동안에는 이단의 누명이 두려워서 누구도 사도신경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니까 성경대로 믿는 많은 교회들로부터 사도신경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높아지고 있다. 성경에 없는 신조를 사람들이 만들어 가지고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을 정죄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Ⅰ. 사도신경은 거짓말이다.

전설에 의하면, 사도신경은 12사도들이 한 마디씩 그 항을 만들어 낸 기독교 근본 교리라고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나, 12사도가 그런 일을 한 적이 성경 기록에는 전혀 없다. 있다면, 반드시 사도행전 어디에 그 내용이 당연히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이나 그 밖의 어느 서신서에도 그런 언급이 전혀 없다. 사도들이 만들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사도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은 사도들 이름을 모독하는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신조로 삼아 그것을 고백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 없는 짓을 하다 보면 누구든지 항상 그런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도신경 안에 들어 있는 그 내용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아니고,〈사도신경〉이란 그 명칭부터, 그리고 그에 대한 전통이 거짓이라는 말이다.

Ⅱ. 사도신경은 전설이다.

거짓말을 고백하면 거짓 신자 밖에 되지 않는다. 1885년에 발행한 한국 카톨릭 대사전에 의하면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하여 말하기를, 6세기의 옛 로마신조에 근거한다고 나와 있다. 5세기까지는 사도신경의 내용 가운데 “천지의 창조주, 잉태되어, 고성소에 내려가시어, 공번된, 모든 성인들의 통공, 영원한 삶” 등의 표현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사도신경의 형태는 6세기경에 와서야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신경을 초대교회 사도들이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의 전설이라고 하였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pp.530~531).

한글 사전에 보면 ‘전설’(傳說)이란 ‘예전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라고 하였다. 전설이란 TV에 나오는 ‘전설의 고향’같이 허망된 이야기를 뜻한다. 전설은 진리가 아니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신앙고백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대로 믿는 성경 신자들의 단호한 주장이다. 사도신경의 지금 형태가 6세기경에 완성되었다고 하면 사도들이 만들었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전설을 믿고 그 내용을 고백한다고 하면 전설 속의 주인공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실하고 신앙적인 성경의 사람으로는 양육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사도적 신앙의 토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사도들의 토대 위에 세워졌던 초대 교회에는 사도신경이 없었다.

Ⅲ.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 신조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성경 외에 두 가지 권위가 더 있다. 하나는 교황의 칙령, 또 하나는 교회의 전통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성경이 없어도 교황의 칙령과 교회의 전통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권위는 오직 성경 하나뿐이다. 카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점이 많이 있지만 최고 쟁점은 성경권위에 관한 문제이다. 카톨릭 대백과사전에는 사도 신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되는 핵심 교리를 담은 초대교회 신앙고백문, 가톨릭 주요 기도문의 하나... 이 신경은 또한 미사 중 말씀의 전례에 바쳐지는 감사의 기도이다…. 중세 초기에 이르러 현재까지 사도신경은 모든 서방교회에서 세례의식에 사용되었으며 매 주일 미사 때 신자들이 이 신경을 외움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새롭게 한다.

동방교회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며 프로테스탄트에서 종교개혁 이후 사도신경의 채택과 평가문제는 논쟁을 거듭해 오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사도신경은 교회일치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앙기조로써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다” (카톨릭 대백과사전 pp.530~531).

카톨릭 대백과사전에는 분명히 사도신경은 ‘카툴릭의 미사 때 사용하는 기도문의 하나로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되는 핵심 교리를 담은 초대교회 신앙고백문, 카톨릭 주요 기도문의 하나’라고 하였다. 카톨릭 대백과사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신앙고백문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짓말이다.

Ⅳ. 카톨릭적인 사도신경의 내용

사도신경이 카톨릭 교회의 로마 신조라는 증거는 그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1.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카톨릭 교회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성모(聖母)’ 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리아를 통해서도 구원받는다고 한다. 때로는 예수님보다 마리아를 더 위하고 경배한다. 근일에 와서는 예수님과 마리아의 ‘공동 구주 교리’를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마리아를 신성화하기 위해 마리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교리를 만들었다.

(1) 마리아 종신 처녀설
(2)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聖母)
(3) 마리아 무죄 잉태설(죄 없이 태어났다)
(4) 마리아 죽은 후 승천설 (8.15. 승천일)

성경적으로 볼 때 위의 네 가지는 모두 거짓말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후 또 아이들을 낳았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넷이 있고 또 누나들도 있었다(마 13:55~56).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 라고 하였다. 그녀는 자기를 미천한 계집종이라 하였고,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 안에서 기뻐하였다고 하였다(눅 1:47~48). 죄가 없으면 구주가 왜 필요했겠는가?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롬 3:11). 그리고 마리아 승천 기사는 성경 어디에도 있지 않다. 우리 개신교는 카톨릭처럼 마리아를 숭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처럼 마리아를 날마다 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2.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그때부터 예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야 될 것과, 죽임을 당할 것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부터 죽임을 당할 것과…”(마 16:21).

위의 성구가 밝힌 대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으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할 때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자기 손을 씻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맡으라 (마 27:23~24)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셨다’라는 말은 성경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유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으로부터 죽임(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3. 지옥에 내려 가사

영문으로 된 사도신경에는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 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우리말로 된 사도신경에는 이 문구가 빠져 있다. 로마카톨릭교회는 지옥을 ‘고성소’라고 번역한다. 고성소(古聖所)라는 말은 ‘경계’에서 유래했다. 라틴어 신학에 의하면 이 말은 이미 죽은 이들이 지복직관(至福直觀)에 완전히 들지는 못했지만 벌을 받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머무르는 곳을 지칭한다.(카톨릭 대백과 사전, p.88). 이 문구를 삽입하게 된 동기는 카톨릭의 사후 구원론인 연옥 교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연옥에 대한 천주교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데가 있는데, 사람이 죽은 다음에 죄의 그림자도 없는 깨끗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대죄(큰 죄) 중에서 하나님과 영영 등을 진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 그런데 소위(작은 죄)나 불완전을 가지고 있거나 죄에 대한 적당한 보속을 완료하지 않은 영혼들은 연옥에서 그 나머지를 보속해야 한다. 즉 그들은 거기서 작은 죄를 충분히 속량 받거나 또는 그들에게 합당한 일시적인 형벌을 충분히 받기까지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의 기간은 그들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드려지는 미사와 기도와 헌금과 그 밖의 경건한 행위로 말미암아 단축될 수 있다.”(유선호, 천주교를 배격하는 7가지 이유, p.154).

이런 내용은 외경 마카비하 12:43~54에도 있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외경을 하나님의 영감 받은 것으로 성경과 동등하게 권위를 인정한다. 이것은 자기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을 찾으려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4. 거룩한 공회

카툴릭 학자 제임스 C. 기본스가 쓴 ‘교부들의 신앙’(장면 역)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1964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으로 발표했던 유명한 책이다. 이 책 45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들은(개신교) 사도신경의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를 믿으며...”를 외우면서 공교회(公敎會) 즉 카톨릭이라는 이름을 배척 한다. 다만 카톨릭 (Catholic) 즉 공교회 라는 명칭은 우리에게만 적합하다”라고 하였다.

카톨릭 교회는 지금까지도 개신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도들의 지상권(至上權)을 계승한 교회는 지상에서 오직 카톨릭 교회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교회만 참된 사도권을 계승했다고 한다. 그들의 책들 속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이 카톨릭 신조가 아니라고 한다면 ‘전설의 고향’에 제 정신을 빼앗긴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도 아니고, 사도들이 만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개신교회 신앙교리로 고백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조라는 것 뿐이다.

원래 ‘카톨릭’(Catholic) 이란 말은 갓(Cat) 과 홀릭(holic)의 합성어로 ‘갓’은 산스크리트어에 어원을 두고 있고 그리스어를 거쳐 파생된 어머니(Mother) 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리고 ‘홀릭’은 ‘전체적으로 바쳐진’이란 뜻이다. 즉 원래의 그 단어는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바쳐 진’이란 뜻을 가진 월신(月神, 세미라미스) 숭배의 단어인 것이다. 이것이 결국 마리아 숭배와 상관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틴은 이전에 황제들에게 태양신의 최고 사제라는 칭호가 주어졌듯이, 자신에게 폰 티펙스 막시무스 즉 ‘최고 사제’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그 말이 오늘날 ‘교황’ (아버지 중의 아버지) 이라는 칭호의 시초가 되었다(박만수, 두 뿌리, p.142).

그러므로, 개신교에서 계속 사도신경을 사용할 경우 교인 전체를 카톨릭 신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은 매 예배시간에 카톨릭 신조를 자기의 신앙신조로 삼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카톨릭(Catholic)의 뜻은 본래 ‘보편적 혹은 세계적이란 뜻으로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쓰고 있는 사도신경에 쓰여진 배경은 그 역사 때문에 전혀 다르다. 사도신경에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를 ‘거룩한 공회’라고 했는데, 이 ‘공회’란 말은 분명한 뜻과는 거리가 먼 애매모호한 뜻이다.

개역한글판 성서에 의하면 ‘공회’(公會)란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끌고 간 곳이 공회였고(눅 22:66),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한 곳도 공회였다(요 11:47). 또 환난 때에 성도들을 공회에 넘겨줄 것이라고 하였다(마 10:17). 베드로(행 5:21, 27)와 바울이 심문받은 곳이 공회였다(행 23:1, 15, 24:30). 카톨릭이 사용하는 공번된 교회라는 말을 잘못 알고 사용하는 까닭에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게 만든 것이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던 그 장소(공회)를 믿는다면 다시는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 말도 역시 카톨릭의 연옥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천국과 지옥 사이 ‘연옥’이라는 중간 상태 교리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무죄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큰 죄를 지은 자는 지옥으로 가지만 그 중간층의 사람들은 모두 연옥에 가서 갇혀 있게 되는데, 이때 생존해 있는 가족 중에서 그 사람을 위해 미사를 드려 주고 자선을 베풀어 선한 공적을 쌓아주면 그 공로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이다. 이러한 교리, 곧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교통하는 것을 그들은 ‘통공’이라고 한다.

개신교회는 이 뜻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 성도의 교통을 성도의 교제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교통’과 ‘교제’는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사후 구원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연옥교리를 부인한다. 카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통공(교통)과 개신교회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V. 사도신경을 가장 옹호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

이러한 교리적인 이유와 역사적 배경 때문에라도 사도신경을 가장 옹호하고 두둔하는 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임을 다음에 인용하는 교리해설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성 레오(St. Leo) 는 아무도 사도신경을 무지하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 막시무스(St. Maximus)는 이 신경(信經)에 무지한 영세 받은 신자들은 그의 시대에 있어서 믿음의 최대의 적(敵)으로 간주했으며, 오늘날에는 자신들의 교리를 모르는 카톨릭 신자들을 이유 없이 믿음의 최대의 적들로 간주할 수 있다고 했다.

성 토마스(St. Thomas)는 이 신경에 대하여 고의로 무지하게 되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죄로 간주했다.

한 마디로 사도신경에 무지(無知)하면, 신앙의 최대의 적, 곧 이단이 되고, 동시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최대의 적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탁명환 씨가 설정한 이단 판별의 기준은 중세적(中世的)인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힘있게 대변(代辯)한 데 불과하다. 사도신경에 대한 충성 여부를 정통과 이단의 판별 기준으로 삼는다면 로마 카툴릭 교회는 최선의 정통이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확인된 개신교의 정신은,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절대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1546년 4월 6일, 개회중이던 트렌트 종교회의(1545~63) 제 4회기 동안, “성경과 전통(傳統) 은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용납되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참 신앙의 뿌리를 찾아 바르게 믿고 바르게 판단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식(良識)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만약, 사도신경이 각 시대의 정통신앙의 기준이 될 만 했다면 그 후에 니케아 신조(325년)나 칼케돈(451년) 신조가 다시 나와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종교개혁 이후 교파들이 저마다 신조를 만들어 30개도 넘는 신조가 양산되어 이전 것을 대신하거나 보강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초기의 신조들을 방편으로 현대 교회들의 일치된 정통성을 이룩하려는 시도의 부당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적절한 평가가 있다.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조 등을 기초로 교파들을 연합시키려고 하는 것은 다 자란 성숙한 어른을 아이들 상태로 돌아가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Ibid., p.40).

지금 대부분 개신교회가 사도신경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저 다른 사람들을 따라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성경적 관점으로 모든 신앙생활의 근본을 삼고 ‘오직 성경으로’ 라는 구호 아래 비성경적 교리나 신조를 일체 안하는 것이 더 성경적임을 알고 믿는 교회이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신조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어 왔다.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에 없는 것은 일체 배격하고, 성경에 있는 것은 목숨을 걸고 지켜 행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단들이 성경에 있는 것은 행하지 않고, 성경에 없는 인위적인 교리나 신조를 만들어 행하므로 모든 교회들을 성경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루터를 통하여 타락한 로마 카톨릭 교회로 부터 말씀 중심 신앙회복을 부르짖고 새롭게 세운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교회 일치라는 미명하에 그들의 신조를 따른다는 것은 개혁교회의 위대한 유산인 ‘오직 성경’의 교리를 포기하게 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에 없는 인위적인 교리나 신조를 용감하게 버리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갈 때 사도신경의 전설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들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마음과 성품 다하고 온 뜻을 다하여 구주와 주님 되심을 고백하는 고백이 시간 시간 삶에서 고백되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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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만든 사도신경을 폐지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안하면 됩니다. 맨 상단의 주보처럼 안하거나, 주기도문으로 대체하십시오! 끝까지, 정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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