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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의 역사 - 중세의 음악4

2008.03.22 20:26

김동현 조회 수:3706

중세의 음악이 교회를 중심으로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와 무관한 음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종교와 무관한, 이른바 세속음악이 중세에도 상당히 많이 존재했습니다. 다만 현재의 우리 손에 남아있는 자료는 매우 적지요. 특히 13세기 이전의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차이를 다룬 그림(12세기). 위의 그림은 착한 음악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다윗 왕의 모습입니다. 왼쪽 구석에서 페달을 밟고 있는 두 사람을 주목해주세요. 아래 그림에서 가운데 인물은 교회가 세속 음악을 비난하기 위해 일부러 악마같이 그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물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은 중세 세속음악인 정글레르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그림의 왼쪽 아래에는 두 사람이 재주를 넘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중세 사람들 중에서 읽고 쓰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성직자, 그중에서도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인쇄술은 거의 발달하지 않았죠.

따라서 몇 되지 않던 성직자들은 신학자들의 저작, 교육용 입문서, 각종 종교서적을 필사(베껴서 옮겨 씀)하는 데 쫓겨서 세속의 예술을 기록해서 보존해 두는 것은 생각조차 못 했던 것입니다.

글을 아는 사람이 교회 바깥에도 있긴 했지만, 이들은 또 귀족 주인을 위해서 일하느라 바빴습니다. 즉 귀족들의 세련되지 못한 사투리 라틴어를 문법에 맞는 것으로 고치거나, 편지를 대신 써주거나, 관청의 하인으로서 일했던 것이지요.

중세에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속적인 시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중세 초기의 성직자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530?-609)가 남긴 라틴어 시들이 그런 것이지요.

이 시들은 대부분 비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같은 고대 로마의 황금시대 시인들을 본보기로 삼아,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대중적인 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노래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교회음악과 달리 악보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세 전체에 걸쳐 기보법이 조금씩 발전하긴 했지만 이 역시 교회음악을 위한 성직자들의 기술일 뿐이었죠.

9세기에 이르러, 세속적인 시에 음악을 붙였던 사람들은 크게 두 계층이었습니다. 하나는 타락한 수도사들로 이루어진 골리아즈(Goliards)였고, 다른 하나는 아주 천한 계급으로 광대노릇을 하던 정글레르(Jongleur)였죠.

골리아즈는 일종의 유랑시인들로서 시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이들은 신학을 연구하던 당시 대학의 학생들이었는데, 일종의 성직자들이었죠. 이들은 라틴어로 노래했는데, 이 작품들은 대부분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사본 속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사는 주로 연애나 술에 대한 것이었고 기독교를 풍자한 것도 있습니다. 이 노래들은 많은 부분 성가에서 유래했다고 보여집니다.

광대인 정글레르는 주로 프랑스어로 노래했습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과 교육받은 사람들의 공식용어는 라틴어였지만, 실제로 일반사람들은 각 지방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남프랑스 사람들은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들의 말로 시와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1세기의 남프랑스는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사회였습니다. 더 이상 전쟁은 존재하지 않았고 귀족들은 우아한 생활을 영위했죠. 이런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싸움터에서 용맹을 떨칠 수 없는 기사들이 궁정의 귀부인을 위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사계급과 귀족으로 구성된 이들을 트루바두르(Troubadour)라고 불렀습니다. 대표적인 트루바두르는 기욤 공작(1071-1127)입니다. 현재 그의 시 11편이 남아있습니다.

기욤을 비롯한 당시의 음악가들은 주로 자기가 사랑하는 귀부인을 향해 노래했지요. 그러나 트루바두르의 예술은 1209년, 로마교황군이 남프랑스의 도시 알비에서 이단과의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사라져버렸습니다.  
음유 시인(아래 가운데서 연주하는 사람)과 그의 음악가 친구들. 독일의 미네젱거와 프랑스의 트루바도르와 트루베르, 영국의 민스트렐은 모두 세속음악가들로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궁정의 귀부인들을 위해 연주되었지요. 이 그림은 독일의 미네젱거를 그렸으며, 등장하는 악기는 왼쪽부터 테이버, 직관 코르넷, 숌, 피들, 비엘, 프살테리움, 백파이프입니다  


한편 북프랑스는 일찍부터 남쪽의 트루바두르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프랑스어(프로방스 어)를 북프랑스어(랑그 도일(Langue d'oil))로 번역하는 것에 머물렀지만 점차 독자적인 작품을 내놓게 되었죠.

트루바두르의 북프랑스 발음인 트루베르(Trouvere)는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 말까지 활약했으며, 약 4000편의 시와 1400편의 선율이 남아있습니다. 트루바두르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작품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세속음악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나 모두, 작가가 직접 작품을 연주한 것이 아니라 대개 고용되어 있던 전문 음악가 정글레르(메네스트리에(Menestrier)라고도 부릅니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정글레르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주 미천한 신분의 광대들이었죠. 이들은 귀족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전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정글레르는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성들을 여행했지만, 어떤 정글레르들은 장터를 떠돌며 연주하여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청중의 요청에 따라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곡예나 마술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정글레르의 공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샹송 드 제스트>인데 이것은 위대한 영웅들의 무용담을 노래하는 서사시였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롤랑의 노래>는 들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13세기에 이르러서 이 새로운 음악은 전유럽으로 확산되어 세속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각 나라는 서로 다른 시나 노래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음악적 틀과 내용은 유사성을 가졌지요.

대표적인 세속음악의 형태는 발라드, 파스토랄, 사랑의 노래, 새벽의 노래 등이 있었습니다. 이 노래들은 물론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들이지만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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