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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의 역사 - 중세의 음악3

2008.03.22 20:25

김동현 조회 수:2915

12세기 파리는 당시의 가장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1137년부터 1223년까지 루이 7세와 필립 2세(필립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정치인들이 서로 협력했기 때문에 프랑스 사회는 안정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즉 파리를 국가의 중심으로 세우고 도로의 포장, 외벽의 구축 등 도시 정비를 완성했으며, 1163년부터는 노틀담 대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파리가 당시 유럽 최고의 두뇌와 재능을 끌어모은 것은 당연했죠.

당시 파리대학은 철학의 중심지였으며, 시토파 수도회(Cistercian Order)의 실질적 창시자 생 베르나르(1090-1153), 개념론의 대표자 피레르 아벨라르(1079-1142), 역사가이자 인문주의자 존(1115?-1180), 파리 주교로서 스콜라 신학의 교과서가 된 『명제론 주해(Sententiae)』를 쓴 페트루스 롬바르두스(1110?-1160) 등 뛰어난 학자들이 교수로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음악은 교육의 중요한 일부로서 지금까지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론 면에서뿐만 아니라 실기의 측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면 파리 주교였던 페트루스 롬바르두스는 노틀담 성당 부속으로 성가대 학교를 육성하고, 나아가 대학과의 합병을 추진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노틀담 성당뿐만 아니라 파리 주변의 다른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파리의 노틀담 성당 주변에서 일어난 음악적으로 새로운 움직임들을 일반적으로 '노틀담 악파'라고 부릅니다. 노틀담 악파에서 가장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한 작곡가는 레오닌과 페로틴입니다.

레오닌은 교회력을 통해 일년간 사용되는 모든 성가 가운데 가능한 것은 모두 두 성부의 오르가눔으로 작곡했습니다. 또한 교회음악에 쓰이는 리듬을 체계화해서 그 패턴을 정리한 리듬선법 6가지를 제조해 내기도 했지요.

이 리듬선법은 3이라는 숫자를 근거로 해서 길고 짧은 음가를 다양하게 안내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도 이 음표의 패턴을 보면 어떤 리듬선법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레오닌이 작곡한 오르가눔들은 훈련받은 전문 가수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가의 어느 부분이 다성적으로 다루어져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죠. 즉 본래는 독창으로 부르던 좋은 부분이 다성화되고, 합창 부분은 단선율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전형적인 레오닌의 오르가눔 양식은 독창자에 의해 불리는 다성 부분과 합창에 의한 단성 부분 사이의 대비가 특징입니다.

한편 페로틴은 두 성부의 구조를 세 성부로 늘리는 데 공헌했습니다. 그의 음악의 특징은 리듬이 더욱 잘게 나누어지고 다양함을 띠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그라두알레 <지상의 모든 나라들은 보았다(Viderunt omnes fines terrae)>와 12월 26일의 성 스테판의 축일을 위한 그라두알레 <대주교들은 자리에 있어(Sederunt principes)>는 4성부를 위한 페로틴의 오르가눔으로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그런데 레오닌에 의한 오르가눔의 발전 결과, 음악과 예배의 균형이 잡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오르가눔 양식에서는 성가의 특정 가사에서 선율이 길게 늘어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차지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예배의 조화를 손상시킨다는 주장이었죠. 어떤 성직자들은 다성음악을 금지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로틴은 오르가눔 양식의 장대한 부분을 대신하는 것으로 <클라우술라(Clausula, 라틴어로 '종지'의 뜻)>라는 새로운 부분을 작곡했습니다. 레오닌이 작곡한 곡에다 페로틴이 리듬 정형을 도입함으로써 음악에 소요되는 시간을 훨씬 짧게 한 것이지요.

노틀담 악파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수평적 첨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음악의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수정하고 첨가했던 것이죠. 앞서 말한 '트로프'가 대표적이죠.

맨처음에는 가사만 늘리던 트로프가 나중에는 음악을 늘려 붙이는 때도 있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아예 음악과 가사를 함께 기존의 성가에 새로운 부분으로 집어넣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레오닌과 페로틴, 그들을 둘러싼 무명 작곡가들의 작품은 노틀담 악파로 불리는 동시에 '고딕음악'이라고도 일컬어집니다. 고딕이라는 용어는 원래 이 시대의 건축에 사용된 것이지만, 음악에도 잘 어울립니다. 예를 들어 노틀담 대성당 건물과 오르가눔 음악은 둘 다 규모의 장려함과 공간의 넓이를 느끼게 합니다.

고딕 양식의 교회건물이 지니는 당당한 외관은 오르가눔의 특정 가사(테노르)에 붙여진 길게 늘어진 음에 비교되고, 그 가사 위에서 불리는 선율인 두플룸과 트리플룸은 고딕건물 상부에 덧붙여진 정교한 장식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르가눔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조로운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끝없이 이어지는 지속음 위에서 비슷한 리듬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게다가 선율의 변화는 적으며, 높은 성부는 마치 같은 움직임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여러 번 들어보면 처음에는 단조롭게 들렸던 것이 마치 최면술에 걸렸을 때처럼 마음이 끌게 되고, 길게 이어지는 되풀이가 거대한 음의 울림 속에서 극히 작은 움직임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중세의 교회 안에 섰을 때 받는 압도적인 인상은 페로틴의 <지상의 모든 나라들은 보았다>를 들었을 때 받는 인상과 비슷합니다.

노틀담 악파가 발전하고 있을 때, 중세 음악에는 사퀸스(Sequence)와 모테트(Motet), 콘둑투스(conductus) 등 새로운 장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교회음악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상당한 팽창을 했습니다.

한편 그동안 성스럽고 거룩하고 경건한 음악을 고수해왔던 교회도 12세기에 이르면 부를 축적해 타락하게 되었고, 따라서 교회음악도 팽창과 더불어 세속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출처..한국문화예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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