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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의 역사 - 중세의 음악1

2008.01.19 21:07

김동현 조회 수:2845

1 - 중세와 기독교

서양의 음악사에서 중세라고 하면 보통 초기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던 시기부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1450년대까지를 일컫습니다.

중세라는 시대는 정신적으로 기독교 교부철학의 영향 아래 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중세의 음악은 고대 그리스처럼 가장 이상적인 이데아(idea)로 가기 위한 삶의 과정으로 여겨지지도 않았고, 또 로마시대처럼 쾌락을 위한 존재로도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음악의 존재 의미와 존재 가치가 가장 완벽함의 표상인 하느님을 찬양할 때 생기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중세가 어떤 경로를 거쳐 기독교의 시대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할까요? 기독교는 본래 유태교의 테두리 안에서 유태교를 개혁하려는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죠.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예수는 유태인들과 로마제국의 협동작전으로 처형되고 말았죠.

즉 유태교 개혁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개혁일파들은 이단자로 몰려 추방되었다는 뜻이죠. 살아남은 개혁파들은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이번에는 비(非) 유태인들을 향해 포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기독교의 예배진행의 구성과 내용, 방식은 유태교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초기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제국은 '황제숭배'를 국민의례로 강요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니, 기독교도들은 황제를 숭배하지 않았고, 따라서 불온분자로 낙인찍히게 되었죠.
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황제는 교인들을 대규모로 처형하기도 했답니다(253∼260). 그러나 이런 것들이 오히려 기독교도들의 단결과 독실함에 불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288?∼337) 황제가 밀라노에서 발표한 칙령(313,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는 여태까지의 박해에서 벗어나 로마제국 공인 종교로 인정되었습니다.
또한 니케아라는 도시에서 열린 회의(325,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세속적 생활 전체에 교회의 힘이 미치도록 결정되었죠. 이에 따라 수도원이 강화되고 예배조직도 정비되었으며 나중에는 로마의 주교가 황제에 버금가는 교황이라는 이름을 얻게도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기독교 교부철학의 '교부(敎父)'란 성서의 증언들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정립한 사람들을 말하는데, 교부철학은 결국 철학으로 승화된 기독교라고 할 수 있겠죠.

기독교 교회에서 음악은 예배에 있어 없어선 안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가대원으로부터 철학자, 신학자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기초적인 지식이었죠. 게다가 중세 교육제도에서 음악은 산수, 기하, 천문학과 함께 '4학과(quadrivium)'의 일부였습니다.


중세의 학문은 '3학과'(trivium, 문법, 수사학, 변증법를 말합니다)와 '4학과'를 묶어 '7자유학과(Septem artes liberales)'라고 불렸습니다. 이중 음악, 산수, 기하, 천문학의 '4학과'는 수와 비례를 연구해서 세계의 조화와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연구하는 '수리과학'이었습니다.
즉 산수(수와 셈)로부터 출발하여, 기하에서 공간을 물리적으로 측정하고, 음악에서 수의 조화를 음에 의해 측정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맨 나중에야 음악에서 배운 비례관계를 통해 천체 운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죠.


결국 중세의 교회에서 음악은 단순히 예배를 기분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은 철학적 깊이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으며, 세계를 창조했다는 하느님의 완전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즉 음악이란 하느님에게 '말씀'을 올리기 위한 가장 적합한 '말'로써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음악의 정통성은 신앙의 정통성만큼이나 중요했고, 이 때문에 중세 이래 서양의 교회는 휘하의 음악가들을 감독하고, 새 작품을 검토하며,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는 역사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초기 기독교가 정착하는 시기 ② 모슬렘 문화의 침입으로 겪는 암흑시대 ③ 9세기 이후 문화를 회복하여 발전시키는 후반부지요. 한편 이 세 시기에서 음악은 좀더 많은 부분으로 나뉜답니다. ⓐ 초기 기독교 음악시대 ⓑ 13세기 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 ⓒ 14세기 아르스 노바(Ars Nova) 그리고 ⓓ 아르스 섭틸리오르(Ars Subtilior)죠.

초기 기독교 음악은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확장·발전되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의 새로운 음악가들은 13세기를 옛 음악시대로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14세기를 아르스 노바(Ars nova, 새로운 예술)이라 부르고, 이에 상반되는 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 골동품 예술)라는 용어를 13세기에 부여했답니다.

한편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음악이 세기말적인 복잡성을 지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 당시의 음악을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의 시대'라는 뜻으로 아르스 섭틸리오르(Ars Subtilior)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전환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문제는 리듬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3박자 음악을 고집하던 13세기의 음악에 14세기는 체계적으로 2박자를 수용하면서 신음악운동을 전개했으며, 15세기는 다성부에다가 각각 다른 비례의 난해한 리듬을 포함하면서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내놓았습니다.

출처...한국문화예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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