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축도는 가톨릭 베네딕트 신부가 만든 것이다 기본 카테고리

ico_tag.gif개신교, 초교파, 사제와 평신도는 가톨릭의 서열이다, 개신교는 만인제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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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https://is.gd/wP15pb

[원제목] 축원하노라? 

글쓴이: 임동선      2005. 01. 16

축도?

설교 말씀은 못 들어도 축도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예배당의 식당 한 구석에서 일하다가도 축도시간만 되면 허둥대며 예배실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축도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정한 예배의 마지막 순서입니까?

목사 안수를 앞둔 많은 전도사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축도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보, 어때, 이 정도로 올리면 괜찮을까?" 팔을 들어 보이면서 자신의 아내에게 지도를 부탁하는 전도사들, 이제 곧 나도 축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실컷 부풀어 오릅니다. 

축도의 정의

기독교 사전에서는 축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목사가 예배 시간에 회중을 위하여 드리는 축복 기도로서 보통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있는 말씀을 외운다. 이 축도 때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옛적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축도를 가장 엄숙한 순서로 인정하여 교직은 예복을 입고 이를 선언 한다"

예배의 마지막 순서? 예수님이 명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축도를 가르치신 일이 없습니다. 아무 제자에게라도 축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신 기도, 도고, 감사 등의 기록은 있으나 축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 축도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앙심을 품고 너희를 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8), 

『악을 악으로,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축복하라. 이런 일을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줄 아나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9).

(중략)

복을 비는 기도?

만일, 그것이 기도라면 “있을 지어다” 라고 끝나는 것은 웬 말입니까?

“간절히 축원하노라” 라고 끝나는 것은 웬 말입니까?

복을 비는 사람이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것이 과연 기도의 합당한 모습입니까?

이것은 종교적 지위를 이용해서 스스로를 격상시키려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내가 복을 비니까 너는 들어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는 자는 권위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기도의 첫번째 태도가 구하기 위해 높은 자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또, 축도가 기도라면 그것은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빌지 않습니까?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을 부탁하셨는데요. (요 14:13)

왜, 축도는 이 중요한 원리를 깨뜨리는 것입니까? 오히려 그것이 기도라면, 이렇게 끝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몇 가지 문제점? 

우리는 축도의 문제점을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축도의 정의처럼 까운을 입고 해야 하는 기도와 까운을 벗으면 할 수 없는 기도가 있다면 성경에도 없는 의식의 산물입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아직도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전통을 모방하여 복음이 온 후로도 여전히 그 전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축도가 복을 비는 기도라면 기도할 수 있는 자(성직자들)와 기도할 수 없는 자(성직자와 대조되는 성도들:평신도)의 구별이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위엄과 권위와 자만의 태도로 기도한 바리새인보다 "나는 죄인이로소입니다"(눅 18:13)라며 겸손히 기도하는 자가 의롭다함을 얻고 돌아갔습니다.

셋째, 일반적으로 어두운 교인들은 의식화된 축도를 복 받는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도한 그 사람에 의해서 복이 좌우되는 것처럼 헛되이 믿고 있습니다. 

축도의 기원

축도는 비 복음적인 용어이며 의식입니다. 이는 로마 카톨릭에서 교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며 성도들의 기복신앙을 이용한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무당이나 샤만들이 행하는 기복을 답습한 교회의 이교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본래  축도 베네딕숀(Benedic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부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위해 베네딕트 신부가 만들었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는 개신교가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교권이라는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예수 한 분으로는 부족한 것처럼 어떤 대리자를 세우고 그를 통하여 복을 받으려고 하는 성도들의 태도는 더 이상 성경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목회자나 사제(신부)라고 더 의롭게 하시고, 평신도라고 덜 의롭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자에게 그리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이는 거기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롬 3:22)

펌출처: 말씀침례교회 / http://av1611.net/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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