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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퍼진 ‘기부 바이러스’

13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금천교 시장. 판자로 만든 천막에서 40여 년간 떡볶이를 팔아온 김정연(94) 할머니는 이날도 장사를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할머니는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치는 ‘행복한 유산 캠페인’에 동참해 전세금 800만원과 예금 1500만원 등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동사무소에 찾아갔어. 직원이 그 사람들(공동모금회)을 소개시켜주더라고….” 김 할머니는 시장과 가까운 배화여고 앞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다. 개성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은 뒤 서울 동대문시장에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했다. 그때 나이 서른셋. 개성에는 11살, 9살, 7살짜리 자식 셋이 남아있었다. “두고 온 자식들 찾아준다며 정부에서 촬영해 갔는데 소식이 없었어. 어디 폭탄 같은데 맞아서 죽었나 봐.”

올해 추석에 다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할머니는 이제 가족보다는 나눔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20여 년 전에는 장기 기증 서약을 했다. 그는 ”부모 없이 자라는 학생들에게 내 유산이 등록금으로 쓰였으면 좋겠어. 내 장기는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으면 해”라고 말했다. 나눔의 기술과 나누는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김 할머니와 같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부터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참여한다. 최근에는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기부가 진화하고 있다.

‘행복한 유산 나눔 캠페인’에는 13명이 동참했다. 이 가운데 11명이 혼자 사는 기초수급자 노인들이다. 지난해 8월 전세금 700만원과 예금 기증을 약속한 김덕례(79·서울 동대문구) 할머니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환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 기부자도 늘고 있다. 매출이나 급여의 일부를 매달 기부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미래약국은 매달 5만원을 기부한다. 수익의 1%가 넘는다. 이재걸(54) 약사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마치며 어렵게 자랐고, 생활이 안정되면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눔 그 자체가 기쁨”이라고 했다. 떡볶이가게·화원·호프집·납골당·병원 등 거의 모든 업종의 자영업체 2700여 개가 매출의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트위터와 스마트폰이 기부문화를 바꾸고 있다. 방송인 황기순씨는 8월 ‘사랑 더하기 사이클 대장정’을 했다. 10년째 계속한다. 동료 연예인들과 11일 동안 전국을 돌며 거리에서 공연해 모금한다. 여느 해와 달리 올해는 매일 매일 상황을 트위터로 중계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예년보다 뜨거웠고 올해 3690만원을 모금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달 중 스마트폰용 기부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매출의 일부를 기부하는 가게를 찾을 때마다 사랑의 열매가 자라는 프로그램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금 기부는 1999년 2조9000억원에서 2008년 9조원으로 늘었다. 음식과 같은 현물 기부도 지난해 2만7232명이 참여해 557억원어치를 내놨다. 기업 사회공헌(2008년)도 2조2000억원으로 6년 사이에 세 배로 증가했다. 개인 기부도 크게 늘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액에서 차지하는 개인 기부의 비율이 2005년 32.3%에서 지난해 40.5%로 증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우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기부금의 비율(2007년)이 0.9%로 미국(2.2%)에 비해 낮다. 개인 기부금 중 종교단체 헌금이 80%(미국은 30%)나 된다. 개인 고액 기부가 저조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은 최고 부유층의 10%가 내는 기부금이 개인 기부금의 절반가량을 치지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을 기부받은 기관이 고유목적 사업에 쓰지 않을 경우 증여세를 내는 점도 기부를 어렵게 한다. 한솔세무회계사무소 조혜규 회계사는 “기부는 세율을 낮추거나 세액 공제를 늘리고, 부동산으로 대신 내는 물납(物納)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효진 홍보실장은 “기부금 세액공제(연간 10만원)를 도입하고 나눔 교육을 활성화하며 나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앙일보]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김민상 기자 [step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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