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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에 담긴 슬픈 사연

2010.04.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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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상대적으로 자연에 대한 동경이 자리잡았다. 미술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여 자연의 향수와 감성을 표현한 자연주의(1820-1870)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 아래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귀함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자연주의 유파들 중에서 프랑스의 바르비종이라는 마을에서 그림을 그린, 바르비종 유파라는 풍경화가들의 등장은 미술계의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유파에 속한 인물 중에서 유명한 화가로 장 프랑수아 밀레가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0.4-1875.1.20)는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창립자들 중 한 사람으로 사실주의(Realism) 혹은 자연주의(Naturalism) 화가로 불리고 있다. 밀레는 사실주의적 농부의 초상을 주로 그렸다. 신화나 종교를 소재로하여 그린 이상화된 그림이 아니라, 그는 현실적인 시각으로의 농민의 생활상을 표현하였으며, 노동에 대한 숭고함과 농민들의 강인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의 예술특징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는 '이삭 줍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밀레의 ‘만종’은 우리들 에게 매우 친숙한 그림이다.  한 농부 부부가 황혼이  깃든 전원을 배경으로 감자가 담긴 바구니를 앞에 두고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다. 알 수없는 엄숙함으로 서 있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대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며, 먼 지평선에서 물들어가는 황혼빛의 배경은 경건함과 더불어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우리가 겉으로 보는것과 같이 마냥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바구니 안에는 씨감자가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이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상대적빈곤으로 많은 서민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림 속 부부의 사랑하는 아기 역시 배고품을 견디지 못해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기를 보내며 부부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마지막기도 밖에 없었다. 이 그림의 바구니에 담긴것이 감자가 아니라 부부의 사랑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그림을 감상한다면, 이들 부부가 왜 그리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는 큰 충격을 받았고,  아기의 시체를 그리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밀레 역시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그려 넣었다. 그 이후 밀레의 ‘만종’은 그저 황혼의 들녁에서 농민 부부가 기도를 올리고 있는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만 유명해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시 결과 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초벌그림에서 실제로 어린아이의 관이 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밀레의 ‘만종’은 처음에 1,000프랑에 국외로 팔려나갔다가 많은 소장자들을 거쳐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다. 이 그림의 값을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프랑스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까지 밀레의 ‘만종’이  값을 측정할 수 없는 보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세상 그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사랑하는 아기를 떠야보내야만 했던 한 농민 부부의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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