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십일조및 각종 헌금 사기에 걸려든 장로.집사(제3부) 기본 카테고리

etc_06.gif?v=2 일반인및 시각장애우를 위한 14분 오디오, https://youtu.be/MpZHmp6Y974

etc_10.gif?v=2  Jesus Kingdom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 메시지 모음 things_14.gif?v=2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 한분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십니까? 저는 개신교 예수복음 전도자입니다. 오늘도, 개신교와 독립교회 장로. 집사. 성도 여러분들을 향하여 어느 집사께서 한국교회의 비성경적인 십일조 주장 세가지에 대한 반론을 각각 설명드린 다음에 최종적인 결론을 맺고 있는 메시지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긴 것이 아닌 것이 되고 아닌 것이 긴 것이 될 수없습니다. 성경에서 예라고 하면 예만 하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오만 하라는 의미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한국교회 회개와 개혁 메시지 오늘의 제목은 '십일조및 각종 헌금 사기에 걸려든 장로. 집사 - 제3부' 입니다. 닉네임을 '다윤이' 라고 밝힌 집사 메시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시간에는,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을 그동안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하고, 세가지의 대표적인 갑론을박 주장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고자 합니다. 십일조해야 한다! 또는 십일조하면 안된다! 라는 그룹으로 나뉘어 있지요. 끊이지 않는 한국교회 십일조 논쟁을 한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십일조 찬성론' 세가지에 대한, 저의 반론 세가지 메시지입니다.

첫째, 십일조는 율법에 정해진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이하여진 것이 아니라 전케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십일조를 해야 한다.. 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반론입니다. 먼저, 율법이 완전케 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은 '살인하지 말라' 라고 했는데, 신약에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원수를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데, 이 율법을 완전케 하신 예수님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말씀하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 싶도록 미운 감정까지도 거두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심 속에서 이미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것이 됩니다.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율법시대의 제사 때에 드려진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적인 제사를 완전케 하신 분이 누구이신지만 알면 됩니다. 바로, 예수님 입니다. 그래서, 매번 소나 양을 잡아 피를 흘려 드리던 제사를 예수님이 단번에 피흘리시므로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혈 찬송을 부르며 예배합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셨다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피흘리심으로 율법이 다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배 속에서 이미 소를 잡고, 양을 잡고, 십일조를 드리고 하는 일련의 율법적인 제사가 포함됐다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십일조가 그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시이다.. 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입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공감하긴 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꼭 믿음의 표시가 십일조이어야만 하느냐 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십일조가 아니면.. 왜, 믿음의 표시를 못하는 것일까요? 십일조라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소유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십일조가 믿음의 표시이다 라고 하는 분들은 굳이 십일조가 아닌, 어떤 명분을 가지고 라도 믿음의 표시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하라고 하니, 어쩔 수없이 하긴 하지만 이게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아나니아와 삽비라 처럼 드리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율법적인 드림과 복음적인 드림의 차이입니다. 예를들어,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시다.

그리되면, 대부분은 십일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른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소득에 대하여 십일조가 아닌 어떠한 형태로든 주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내어 놓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어 드리지 않는 자들도 신앙 양심의 가책을 받겠지요. 이것이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없이 드림으로 믿음을 표시했다 라고 하는 것보다는, 드리지 않아서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는 것이 율법을 완전케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셋째, 물질이 있어야 주님의 일에 해당하는 전도. 선교. 구제를 할 수있으므로, 십일조의 정신을 계승하여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입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제일 큰 문제인 것같습니다. 예를들어, 어느 교회에 100명의 성도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중에서, 50명의 성도가 십일조를 잘 합니다. 그래서, 1년 교회 예산이 1억 정도가 됩니다. 지출 내역으로는 사례비. 예배당 유지비, 관리비등으로 절반을 쓰고, 나머지를 전도. 선교. 구제비로 사용한다면, 그럭저럭 잘한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부흥되어 큰 예배당이 필요해졌습니다. 교인이 100명에서 500명으로 늘어났는데, 200명이 십일조해서 예배당 짓고, 사례비 올리고, 전도비. 선교비. 구제비도 더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교회 부흥입니다. 과연, 이것이 부흥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십일조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서 하지 않으면 도둑입니다! 물질의 복을 많이 받아 주님의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잘못된 가르침 속에서도 성장이 이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이 문제라는 것입니까? 라고 또 반문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신약 교회의 본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셔야만 합니다.

구약 시대 십일조는 제사장. 레위인들을 포함하여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율법의 십일조가 신약시대 교회 공동체 속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새롭게 나타납니다. 바로, 연보입니다. 이 연보를 통하여 가난한 자. 병든 자. 일할 수없는 자들에게 나누어졌습니다. 또한, 전도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연보는 십일조가 가지고 있었던 율법적인 나눔을 뛰어 넘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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