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주일성수,십일조,맥추절,부활절,추수감사절,성탄절은 헌금 갈취다 기본 카테고리

개신교, 초교파, 신약교회는 기부금 형태의 연보만 허용하고 있으며 각자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 십일조와 각종 절기 헌금은 예수 십자가로 폐지했다, 회개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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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출처: https://is.gd/E4eaIR (헌금 종류, 일단 71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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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글쓴이: 정낙원 목사 / 울산목양교회

교회력에 따라서 각종 절기 때가 되어 기독교 TV를 틀면 절기 설교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침, 7월 첫 주는 한국교회가 정해 놓은 교회력에 따라 맥추절인지라 맥추절을 지키라는 설교가 봇물처럼 흘러 넘치고 있다. 설교마다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좋은 신앙이고 지키지 않는 것은 신앙 없음이 되는 냥, 외쳐지고 있다.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목사들의 설교를 듣다가 보면 마치 구약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목사들마다 포장하여 다른 척 각색해서 설교를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한 본질이다.

간단하게 한마디 요약한다면, 구약처럼 바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아 먹었으면 좀 듬뿍 내어 놓으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았으면 감사하는 것이 옳은 믿음이지, 받아먹고 입 싹 닦으면 그것이 도적놈이지, 무슨 성도냐? 라는 식으로 은근히 공갈을 치며 압박하니 무섭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니 알아서 바친다. 그러니, 절기 때만 되면 교회들은 헌금이 쏟아진다. 목사가 내어 놓으라고 하면 교인들이 내어 놓으니, 어느 누가 이런 장사를 마다 하겠는가? 악착같이, 절기를 챙겨 먹어야지 하는 것이다.

없는 절기도 만들어야할 판이다. 신년주일이라고 돈 뜯어내고, 사순절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자면서 한 주간 한끼 금식하라고 하면서 돈 뜯어내고, 부활절이라고 뜯어내고. 성령강림절이라고 뜯어내고, 맥추절이라고 뜯어내고, 추수감사절이라고 뜯어내고, 성탄절이라고 뜯어내고, 송구영신이라고 뜯어내고, 또 어떤 목사들은 일천번제를 드려야 한다고 뜯어내고, 자식들을 위해 서원하라고 뜯어내고, 거기다가 성전 짓는다고 뜯어내고, 성전을 짓고 나면 교육관 짓는다고 뜯어내고,

교육관 짓고 나면 주차장 넓힌다고 뜯어내고, 주차장 넓히고 나면 노인들 위해 공원묘지 준비해야 한다고 뜯어내고, 심심하면 선교사 불러다가 선교보고 한답시고 또 뜯어내고, 농어촌 교회 목사들 순회강연 하면서 수금해 가고..이래서 뜯어내고 저래서 뜯어내고, 이루 헤아리기 조차 어려울 정도의 갖가지 명목의 이름으로 뜯어내고 또 뜯어낸다. 한국교회에서는 최대한 잘 뜯어 내는 사람이 능력있는 목사로 대접을 받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목사들 서재에 헌금개발론이라는 책이 책장에 다 꼽혀 있겠는가!  

심지어, 어떤 목사가 말하기를 양들은 일정한 주기로 양털(돈)을 깍아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건강해 진다고 한다. 참으로 거머리 같이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고 돈뜯어내는 지독한 돈 버러지들이다. 교인들은 목사들의 이런 설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에는 그리 담대하지를 못하다. 몰라서 못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목사의 설교에 토를 달기라도 하면 믿음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되니, 속으로는 씁쓸해 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낙인 찍히면 그 큰 교회에서 승진(직분 상승)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 안다 해도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바쳐야 한다. 수금 장부에 기록이 되니..이 장부야 말로 교인들을 옭아매는 좋은 패가 아닌가? 장차, 안수 집사와 장로. 권사를 뽑을 때 고가 점수가 부족하여 불 이익을 당할까 봐, 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교인들이 이런 설교 들으면 베뢰아 교인들과 같이 과연 그러한가? 살펴봐야 함에도, 먹고 사는 게 바쁘다 보니 따지기 보다는 목사가 어련히 잘 알아서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라는 대단한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경외할만한 대단한 믿음처럼 보인다. 

흔히들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체라고 한다. 그림자와 실체란? 외국영화로 비유한다면 그림자는 화면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동영상과 같고, 실체는 전개 되어지는 활동 그림을 해석해 주는 자막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신약을 전제로 하고 있고, 신약은 구약을 배경으로 서로가 서로를 조명하고 있는 한 셋트이다. 신약이든 구약이든 어느 것 하나 없어서도 안 되고 경홀히 여겨서도 안 된다. 서로가 서로를 해석해 주는 키가 되기 때문이다. 구약을 옛 언약이라 하고 신약을 새 언약이라고 한다.

옛 언약의 절기 속에는 새 언약이 담겨져 있다. 예수님께서 언약의 완성자이시므로 결국 옛 언약 속에 포함된 절기는 예수님께서 완성 하셨음을 알 수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 신앙을 고수했던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이후부터는 모든 구약을 예수그리스도로 재해석 했던 것이다. 바울은 구약을 수건이라 하고 그 수건은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벗어진다고 했다. 구약이라 함은 율법을 말하는데, 율법 속에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십일조나 제사들이나 먹고 마시는 것들이 들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새 언약을 겨냥하여 주어졌는데 예수그리스도로 해석하면 다 풀린다는 뜻이다. 즉, 예수그리스도로 해석이 되어져야 온전히 해석을 했다고 할 수가 있다. 아니,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로 해석이 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구약의 율법 신앙에 특심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는 것도 구약이 명하는 대로 지켜 왔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율법적 관점에서 보던 눈에 비늘이 떨어졌다.

그 후로 부터는 모든 성경이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 것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 완성된 이야기임을 알았다. 다메섹 사건 이후 바울은 반전하여 이제는 모든 성경을 예수그리스도로 재 해석하는 일에 진력하였다. 도리어, 구약식 해석하는 자들과 피나는 싸움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설교할 때마다 구약의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모든 율법은 장래 일의 그림자로서 실상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증거했다.

(고린도후서 3:14~16)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골로새서 2장 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중략)

예수님께서 이 땅에 33년을 사셨는데 유월절은 매년 지키는 것이므로 32년 동안은 부모님과 형제들끼리 구약 방식대로 지켰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자신이 유월절 양이심을 밝히셔야 했기에 마지막 유월절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자기 몸이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제물이라는 사실을 알리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실체가 왔음에도 그림자를 붙잡고 있으면 안된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자인 율법을 붙잡고 있었다. 구약의 절기는 그림자이고 예수님은 실제 남편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이 실제로 오셨으니 그림자 같은 절기는 사라져야 한다. 새 언약이 주어진 후에는 구약대로 절기 지키지 않는다 해서 예수님이 화내지 않는다. 도리어, 구약식으로 절기를 지키면 화를 내신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지켜온 구약의 절기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시내산으로 불러 냄을 받은 모세에게 율법 속에 집어 넣어 주시면서 지키라고 지시하고 명하신 것들이다. 유월절로부터 시작하여 초막절까지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켜야 할 내용과 방법및 날짜까지 다 세세하게 지시하셨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구약에 지켜졌던 절기들을 폐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림자가 실체를 가릴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에서는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들에게 절기를 절대로 구약식으로 지켜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만약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너희들이 만약 절기를 지킨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십자가의 도를 전하면서 수고했던 일들이 헛 것이 된다고 하였다. 바울이 수고한 것이란? 다름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증거한 일이다. 즉 구약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완성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어떤 사람이 절기를 지키는가?를 눈에 불을 켜고 살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대속하신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다 도말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14-15)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의문에 쓴 증서란? 율법이다. 그렇다면, 율법 속에 담긴 절기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도말시킨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완성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고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다 도말하셨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 구약이 말하는 날과 달과 절기를 가감없이 완벽하게 다 지키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교회들은 갖가지 새로운 절기들을 만들어 성도로 하여금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허물은 것을 다시 세우는 반역이 되는 일이다. 이 얼마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우리는 구약의 절기를 지키지 않습니다' 라고 항변을 하지만, 새로운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믿음에 보태어서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거나, 십일조를 해야 한다거나,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거나,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성탄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사순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고난주간과 부활 주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추수감사 주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라는 식의 갖가지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지키고 있다. 솔직히 탁 까놓고 얘기하면, 절기에는 관심이 없고 헌금을 갈취하기 위함이다. 교인들이 그냥 돈을 내지 않으니 갖가지 절기 속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여 헌금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만약, 교인들이 교회가 만든 절기에 헌금 안하면 유야무야 유명무실해 질 것이다. 마치 예전에 부활절 새벽만 되면 지역교회가 연합하여 하얀 소복을 차려 입고 연합예배를 거창하게 드렸었다. 당시엔 다른 날은 몰라도 부활절 새벽예배를 참석하지 않으면 믿음 없는 자로 치부되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 이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주일날 오후 예배를 연합하여 드리자고 광고를 해 대고 있다. 이것도 참석율이 저조하면 사라질 것이다.  

장사가 안되는데 어느 미친 사람이 밤새워가며 정력을 허비하면서 절기를 준비하겠는가? 부활절에 삶은 계란 하나 주면서 수만배 돈을 받아 내지 않는가? 성탄절 연극하나 해 주곤 얼마나 뽑아내는가? 추수감사절 떡 한덩이 주곤 얼마나 갈취하는가? 그래서, 예수님이 구약식으로 세워진 성전을 향하여 강도의 굴혈이라고 일갈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어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서만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셨겠는가? 지금의 이 시대 한국교회를 향한 말씀이신 것임을 바로 알라!

교회들이 갖가지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지키는 것은 개가 토했던 것을 도로 주워 먹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도말시킨 것들을 다시 주워 모아서 지키기 때문이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에게 어느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라고 물으니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어디서든지, 어느 시간이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면 된다고 하셨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란? 성령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약속을 앞세우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피와 살로 세우신 새 언약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장소를 성전이라고 하고 어느 시간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또한 그런 가르침에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게 하는 원수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 교회들이 듣도 보도 못하는 갖가지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지키도록 하는 것들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가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성경적인 일들이 초대교회에 이미 횡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가  눈 앞에 밝히 보이는데 왜? 율법인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라고 질타했던 것이다. 바울이 이런 경고를 한다는 것은 곧 마귀는 어느 시대이고 옛 것을 붙잡으라고 미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영적인 성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바울의 경고는 늘 유효하고 또한 바울에게 경고 받을 짓들을 교회들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아브라함 시대 인간이나 모세 시대 인간이나 2천년 전 바울시대 인간이나 지금 인간이나 똑같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는 늘 되풀이 되어 왔고, 되어 가고 있으며, 되어질 것이다. 신앙적인 일도 마찬가지로 되풀이 될 뿐이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인간의 역사는 늘 반복되는 역사라고 했다.

(전도서 1:9~11)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인간은 어느 시대나 다 똑같고 하는 짓도 다 똑 같다. 바울 시대에 절기 가지고 십자가를 가렸다면 지금도 각종 행사와 절기 가지고 십자가를 가린다. 2천년 전, 마귀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동일하게 활동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동안에는 영적인 미혹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또한, 바울같이 거짓 것을 폭로하는 성도들이 일어나 영적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예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왜?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라고 책망했다. 

(이하생략)

펌출처: http://blog.daum.net/jsoh60/351 

끝까지, 1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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